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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에서 인천의 첫 야구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생각한 게 인천을 연고로 한 팀들을 전부 소개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삼미 슈퍼스타즈에 이어 두 번째로 창단된 인천 야구팀인 청보 핀토스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청보 핀토스 두 번째 인천 야구팀


1985년 전기리그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에 이어 조랑말을 마스코트로 해서 1985년 후기리그부터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삼미의 에이스였던 장명부도 계속된 혹사의 후폭풍으로 하향 곡선을 그렸고 그 외 선수들도 삼미 시절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팀 성적은 최하위였습니다. 팀을 상징하는 색은 빨간색입니다.
투수 교체 시 실제 말이 직접 끄는 마차를 타며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불펜 마차'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속도가 너무 느리고 관중들 함성에 놀란 말이 그라운드에 똥을 싸기도 하는 데다 "핀 순이"라는 이름의 두 말 중의 한 마리가 새끼를 낳다가 죽게 돼서 불펜 마차는 중단되었습니다.

청보 핀토스의 모회사는 중견 섬유업체인 풍한방직이었습니다. 풍한방직이 식품산업에 진출해서 "청보"라는 상표명을 썼고 그때 풍한방직 김정우 사장이 경기고 후배면서 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주 김현철 회장의 딱한 사정을 듣고 후배를 돕고 식품사업도 홍보할 목적으로 프로야구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삼미 구단의 매각대금은 60억 원이었는데 현금 대신 삼미의 부채를 청보가 대신 떠안는 식으로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청보식품은 갑자기 시장에 모습을 보인 기업이어서 루머가 매우 많았습니다. 군납업체로 선정돼서 라면 대량 납품권을 손에 넣어 집권하던 전두환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의 소유라는 루머가 퍼져 있었습니다. 당시엔 청보가 청와대의 보물의 줄임말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통일교의 투자 루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납업체 선정에는 장기하 청보식품 사장이 예비역 장성 하나회 출신이라 군에 파워가 남아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청보 야구단의 팀명은 '청보 팬더스'로 하기로 했는데 당시 청보식품 로고가 판다여서 팬더스로 하려 했으나 OB 베어스랑 중복된 이미지고 약해 보인다고 판단해 바뀌게 됩니다. 마스코트를 말로 정한 건 김정우 구단주의 아이디어로 당시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말은 북미산 조랑말이라고 합니다.
청보식품이 중견 식품회사여서 당시 청보 핀토스는 인천과 춘천의 홈경기마다 곱빼기 라면과 영라면을 관중들에게 나눠줬는데 성적도 별로고 라면도 맛이 없어서 숭의야구장과 춘천 야구장에 많이 버려졌다고 합니다.
당시 청보 라면을 받고 집에서 끓여먹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라면도 못 만드는 게 야구를 잘 할리가 있나!" 또는 "야구도 못 하는데 라면이라고 잘 만들 리가 있나!"라는 욕을 먹었습니다.
거기에 청보의 모회사 풍한방직은 "핀토스"라는 이름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청바지 이름에도 활용했습니다. 감독 시절 허구연이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1985년 후기리그부터 등장한 청보는 4위로 나름 선방했습니다. 시즌 후 청보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코치진과 선수단에 변화를 줬는데 삼미 시절부터 감독인 김진영 감독이 내려오고 허구연이 새로운 감독이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34세 7개월로 역대 KBO 최연소 감독입니다. 거기에 장명부를 방출하고 같은 재일동포 투수인 김기태를 영입합니다. 또 롯데 자이언츠에 정성만(투수), 우경하(외야수), 정구선(2루수)을 보내고 투수 배경환, 이진우, 임호균, 양상문과 내야수 김진근을 데려오는 대형 트레이드를 강행합니다.
큰 기대를 안고 출발한 1986년 시즌은 개막전부터 7연패에 빠집니다. 결국 연전연패를 거듭하다 하위권으로 떨어집니다. 위안은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가 최하위를 해서 최하위는 면했습니다. 그러나 1987년 결국 최하위로 떨어지면서 모기업에 역 홍보효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 모기업 풍한방직과 청보식품이 자금난으로 인해 1987년 시즌 중반부터 야구단의 매각이 추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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